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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걸어보자/남미여행

와라즈 69호수 :: 말도안되게 힘들지만 말도안되게 멋진 트래킹

호수 사진이 엄청나게 멋있어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

후기들이 엄청나서 결국엔 안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갔다온 사람들이 계속 안 가면 후회할 거라고 해서

팔랑귀는 결국 충동적으로 와카치나에서 리마를 거쳐 와라즈로 갔다.

 

와라즈 69호수 트래킹 회사 중 한국인들에게 유독 유명한 회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 회사길래 와라즈에 도착하자마자 그 회사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이상하게 우리 눈엔 그 투어사가 안보였다;

심지어 경찰서에 가서 물어봤는데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인연이 아니었던 걸까...

결국엔 지쳐서 그냥 제일 싼 투어사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트래킹은 어차피 내가 걸어가는 건데 별반 다를 게 있을까 싶었다.

마침 점심식사를 한 Trivio라는 식당 바로 옆에 작은 투어사가 있길래 거기부터 들렸다.

35솔에 가이드 한 명에 9명이 함께하는 투어였다.

저렴한 가격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서 바로 예약하지 않고 숙소 근처 투어사도 들려보고 이곳저곳 들려봤다.

그런데 처음 들렸던 그곳이 가장 싸고 투어 인원도 제일 적었다.

다른 곳은 대체로 45~50솔을 불렀는데, 너무 비싸다고 이전에 갔던 곳은 35 솔이었다고 하니까

싼 게 비지떡이라며. 뭔가 문제가 있을거라고 했다.

돈 내는 만큼 더 철저한 케어를 해준다고 설득했지만... 인원도 20명 가까이 되고...

그 많은 인원을 무슨수로 더 철저하게 케어해줄 건가 싶어서 35솔 투어사로 되돌아갔다.

 

투어사에서 신청서를 쓰는데 이곳을 선택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설명해주는 아저씨가 참 유쾌했다.

아쉽게도 그 아저씨가 가이드를 해주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가이드해준 분도 참 좋았다.

신청서를 쓰면서도 걱정돼서 얼마나 힘드냐고 걱정했더니 별로 안 힘들다고 할만하다고 했다.

그래서 너네는 등산용 폴을 들고 가니까 덜 힘든거 아니냐고..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데 그럼 더 힘든거 아니냐고. 그것 좀 빌려달라고 했더니

처음엔 어처구니없어하는 것 같더니 나중엔 웃긴지 그냥 들고 가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결국엔 우리가 짐이 될 것 같아서 사양하긴 했는데, 아무튼 좋은 분들!

 

 

 

다음 날 새벽 5시 반, 픽업차가 숙소 앞에 왔다.

비몽사몽 2시간 정도를 달려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전 날 미리 준비한 과일이랑 빵으로 아침을 먹었다.

거기서 음식을 주문할 수도 있긴 한데 대체로 도시락을 준비해온다.

(주문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가격도 비싸다보니...)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말이 안 통해서 그런건지(우리만 아시아인이었다.)

가이드가 다른 사람들만 챙기고 우리랑은 영 서먹했다.

 

 

 

아침을 먹고 또 버스로 이동했다.

69호수가 우아스까란 국립공원(Huascaran National Park)에 있는데, 여기 입장료 10솔은 별도로 내야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여자호수라고 불리는 예쁜 호수였다.

여기는 포토스팟인듯 잠깐 내려서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졸리고 갑자기 산을 오를 생각을 하니 막막해서 여기만 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또 버스를 타고 가다가 평지도 아닌 오르막길 중간에 차를 멈추고 다들 내렸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트래킹 시작!

당황스러웠는데, 수풀을 헤치고 내려가보니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졸졸 흐르는 물과 풀 뜯어먹는 소들을 보고 있자니 여기가 지상낙원이구나싶었다.

진짜 말도 안 되게 평화로워서 입이 안 다물어졌다.

 

 

 

트래킹 시작 전 가이드는 우리에게 12시 반까지 못 올라가면 무.조.건 바로 하산하라고 당부했다.

특히 친구랑 나 우리 둘한테 집중적으로 얘기했는데, 우리가 절대 못 오를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초기에 뒤쳐지면 끝까지 따라잡기 힘들 것 같아서 시작할 때 가이드 바로 뒤에 딱 붙어갔다.

같이 간 친구가 우유니에서 고산병 때문에 고생해서 이번에도 그러면 어쩌나 했는데,

고산병이 이미 한 번 지나간 뒤라 그런지 멀쩡했다.

고산병도 한 번 고생하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괜찮아지나보다.

 

 

 

평지까지만해도 걸을만해서 속도를 맞춰걸었는데, 오르막길에서부터 슬슬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뒤로 처지다보니 어느새 거의 꼴찌가 되었다.

다들 전문가였다... 산을 어찌나 잘타던지...

 

같은 팀에 트래킹 전문가같은 페루 출신 아저씨 3분이 있었는데,

가이드가 맨 뒤 사람을 챙겨오느라 이 분들이 길을 안내했다.

빨리 호수에 도착하기 위해 자꾸 지름길이라지만 길도 아닌 길로 가는 바람에 정말 네발로 기어올랐다.

그래서 배로 힘들었는데, 그 덕에 빨리 도착한 것 같기는 하다.

 

 

 

가는 길에 남자호수(?)가 나타났는데, 이 때 이미 지친 상태라 사진 찍을 정신도 없었고

호수도 별로 안 예뻐보였다. 그냥 호수구나...

 

 

 

그래도 꼴찌는 하기 싫어서 안 쉬고 계속 올랐는데, 결국엔 한계를 마주했다.

그렇게 꼴찌로 오던 스위스 여자애와 가이드한테 따라잡혔다.

가이드가 계속 "Are you ok?" 하고 물어왔는데, "I'm ok"하다가 나중엔 그 질문조차 짜증나서 "Not ok! Not ok!"

그런데 가이드가 진짜 너무 착했다. 짜증낸 게 미안하게... 계속 웃으면서 힘내라고 같이 가자고해줬다.

마음과 달리 몸은 이미 내 의지를 벗어난 뒤라; 계속 쉬다 가다를 반복하다가

결국 그냥 꼴찌로 가자 싶어서 다들 먼저 가라고 길을 비켜주고 잠깐 앉아있는데,

가이드가 갈 생각을 안 하고 내 옆에 서서 계속 쳐다보면서 웃고만 있었다;

나 갈 때까지 안 갈 거라고... 하... 제발 먼저 갔으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움직였다.

 

 

 

만년설이 보일 때가 진짜 고비였는데,

가이드는 얼마나 남았냐고 물을 때마다 매정하게 "It depends you"라고 답했다.

 

 

 

하.. 이 장면을 마주했을 땐 정말 눈물 날 것 같았다.

도착했다는 감격과 진짜 멋있구나 하는 감동과...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고 내 옆에 딱 붙어서 같이 가자고 한 가이드 덕에

평균 3시간이 걸린다는 69호수에 2시간 반 만에 도착했다. 산이랑 정말 안 친한 내가 저기까지 간 게 신기하다.

 

 

이 높은 곳에도 소가 있다.

 

해발 4600m에 위치한 69호수! (69번째 호수라서 69호수라고 한다.)

사진으로는 그 감격스러운 장면이 그대로 담기지 않는다.

정말 현실감없는 풍경이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포카리스웨트를 부어놓은듯한 색감!

다들 왜 그 고생을 하면서 올라가는지 알 것 같았다.

 

 

 

진짜 너무너무너무 좋았는데,

부슬부슬 내리는 비때문에 너무너무너무 추웠다.

가이드가 준비해온 따뜻한 코카차를 마시는데도 이가 덜덜 떨렸다.

 

 

 

엄청난 추위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단하다 정말.

너무 추워서 사진도 사진도 제대로 못찍고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으니까

12시 반 하산이었는데, 가이드가 일찍 내려가자고 했다. 어찌나 세심한지...

 

 

올라갈 때 투닥거리면서 갔더니 그새 정이 들었나보다.

내려올 때도 가이드랑 같이 내려왔는데 이번엔 힘들지 않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려올 수 있었다.

막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다른 트래킹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여기도 멋있다고 몇박몇일 트래킹 코스를 함께 가자고 했다;

네발로 기어가는 모습을 봐놓고 어떻게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건지......

 

 

 

중간에 속도조절을 잘못해서 너무 빨리 내려가는바람에 선두주자인 페루 아저씨를 만났다.

저 빨간옷 아저씨가 앞에서 내려가다가 "너 short cut으로 가볼래?" 이러길래

무심코 "yes!"했다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길이 너무 좁고 미끄러워서 발목이 세네번은 꺾였다.

역시 선두주자는 영 안맞다.

거의 끝에는 다리가 풀려서 물에 빠질 뻔했다;

올라갈 때가 더 힘들었는데, 내려올 때는 같은 길이 더 길게 느껴져서 다른 의미로 힘들었다.

 

 

 

마지막엔 비까지 주룩주룩 내려서 홀딱 젖는 바람에 몸이 배로 무거워져서 더 힘들었다.

그래도 2시간만에 하산도 완료!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진짜 말그대로 실신했다.

 

69호수 트래킹 왜들 그렇게 추천하는 지 알겠다. 진짜 정말 멋있다.

꼭 한 번은 해보길 강추한다.

하지만... 한 번이면 충분한 것 같다.

다시 가라면 못 갈 것 같다.